간병이라는 게일반적으로 나에게는 먼 얘기다. 아직 부모님이 멀정하시고 주위에 큰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지인이 그리 많지 않기에 먼 나라 얘기 같고 가끔 뉴스에 오랜 간병생활에 부모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그런 패륜사건이패륜사건이 간간이 나올 때마다 ‘참 세상이 어찌 돌아갈라고 이러는지, 말세다말세야!’라고얘기하던 나도 간병을 시작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이 힘들었다. 부모를모시고 있는 자식이라면 누구나겪을 일이며 힘들고 외로운 일이기에 이렇게나마 글을 써본다.

평생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내가 성인이 된 지 얼마 안지 났을 때 심장이 안 좋으셔서 심장박동기 수술을 하셨다. 그때 중환자실에중환자실에 면회를 간 적이 있는 데 있는데 아버지와아버지와 사이가 그리 좋진 않았지만 누워계신 모습에 기분이 이상했었다. 며칠 후퇴 원하셨고 정상인과정상인과 동일하게 생활하셨다. 그때 그 좋아하시던 술을 끊으셨지만끊으셨지만 담배를 어쩔 수 없나 보다. 어머니는 어머니는 내가 20대 중반중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을 때자궁암 수술을 받으셨다. 중국에 있어서병원을 찾을 수술도 잘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일상생활을 하실 수 있게 완치되셨었다. 나이가 드시면서 당뇨병으로 고생을 하셨지만 인슐린 맞으시면서 별 탈 없게 생활하셨다. 어머니는 동내분들과 어기 저기 산이고 바다고 봄에는 나물 캐러 산으로 가시고동해 번쩍 서해 번쩍 하시는 스타일이다. 거의거의 매일 주말 농장에서 밭을 일구고 흙을 뒤집어쓴 채로 집에 오셨다. 난 그 모습이 싫었고 어머니를 거부했다. 그러다 자궁암 후유증과 당뇨병이 심해지면서 요실금이 심해져 기저귀를 차야 정상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귀찮고 불편하다며 여기저기 오줌을 싸고 다니셨다. 그러면서 당연히 주위사람들이 멀어져 갔고 집은 항상 여기저기 오줌이었다. 당뇨가 있으셨으니 그 오줌이 마르면 하얀 자국이 생겼고 가족들의 스트레스가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쓰레기 취급하셨고 가끔 아버지 방에 엄마가 들어갈 때면 고래고래고함을 치며 더럽다고 호통을 치시며치시며 쫓아내셨다. 와이프는 같은 여자라고 어머니를 많이 챙겼고 그 당시 중학생이던 딸은 참 착하게 잘 견뎌주었다. 그러던 어느 가을 마지막 단풍구경을 하러 떠나려고 준비를 하며 아버지를 재촉하는 와중에 아버지가 평소와 다르게 말씀을 안 하시고 고개만 끄덕이시는 신경 안 쓰시고 기다리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던 분이라 별신경을 안 썼는데 와이프가 아버지방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아버지가 조금 이상하다고 하신다. 다시 가보니 옷은 다 입고 계셨고 양말만 신으면 나갈 수 있는 준비를 하고 그냥 앉아계셔서 나가자고 재촉을 하니 지갑을 꺼내시면서 돈을 주시는 게 아닌가, 나는 같이 가야 된다며 아버지를 일으켰고 문 앞까지 아버지를 부축해 신발을 신겨드리려고 하는데 아버지는 자꾸 신발을신발을 안 신으시고 ‘허허허’ 웃고만 계셨다. 순간 이상한이상한 생각이 들어 말씀해 보시라고 계속 재촉을 했는데도했는데도 말씀은 안 하시고 웃기만 하셔서 얼굴을 자세히 보니 약간 틀어진 느낌이 들었다. 순간 다리가 풀리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를 방으로 모시고 바로 119에 연락을 했고 5분 정도 지나 자구급대원들이 도착을 했다. 나는 이것저것 질문에 대답을 했고 아버지는 계속 말씀이 없으셨고 구급대원 한분이 심근경색인 것 같다고 평소 다니는 병원을 물어봤고 바로 서울대학병원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을 가본 사람은 다 경험해 본 일이지만 응급실에는 참 응급환자가 많다. 정말 많다. 그러니 모든 게 진행이 더뎌보인다.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줄들이 달리고 이거 찍어와라 저거 찍어와라 정신없이 이것저것 하다 보면 느지막이 의사가 와서 결과지랑 사진들을 보며 설명을 한다. 뇌에 작은 핏줄이 막혀서 그쪽이 죽은 거라고 한다. 다행히 빨리 발견되었지만 위험한 부위라 교수님과 상의를 해봐야 한단다. 한참 후에 일단 수술 동의서는 작성하라 해서 했고 교수님 상의만 기다라고 있는데 교수님이 나와 통화를 원한다고 해서 전화를 들었더니 아버지 막힌 부위가 수술은 힘들어서 약물치료로 진행해야 한다고 집중치료실에서 며칠 약물치료를 해보자고 한다. 간병인이 필요하다고 해서 바로 내가 한다고 하였고 아버지 간병을 맞게 되었다. 2시간마다 소변량 체크에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다. 간호사들도 계속 찾았고 밤새 거의 잠을 못 잘 정도로 피곤한 일이었다. 다음날부터 이런저런 검사가 계속 진행이 되었으며 다행히 마비는 피해 가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아버지는 청각을 거의 잃으셔서 보청기를 착용하셔도 옆에서 큰소리로 얘기를 해야 대화가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말을 잘 못하신다. 단어 생각이 안 나 어버버 하시고 대화 진행이 잘 안 된다. 1달가량 병원에서 치료를 하였고 엄청난 양의 약을 받아서 집에 왔다. 도착하자마자 하신일이 담배. 그놈의 담배 때문에 매일매일 퇴원한다고 나를 괴롭히셨었다. 지금 아버지에게는 담배가 가장 안 좋은 걸 아시는데도 참 금연이 힘들긴 하다. 같은 남자인 나도 금연 참 힘듦을 알기에 줄이라고만 했다. 아버지는 하루에 두 끼만 드시는데 죽을 주문 해서 매일 드시겠다고 하셔서 본죽에 매일 두 끼를 주문해서 월납으로 하기로 하고 아버지 식사문제는 해결을 했다. 와이프가 아침에 출근하면서 죽을 준비 해드리면 아버지가 나오셔서 드시고 저녁에는 내가 챙겨드리고 큰 문제없이 평상시 생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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